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게시판
  2. 자료실

자료실

자료실입니다.

게시판 상세
제목 눈오는소리 2020. 9. 14 - 9. 20
작성자 원종오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21-06-15 09:42:09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109

[ 눈오는소리 2020. 9. 14 (월) ]


#연습



삶에는 연습이 없지만, 연습이 아닌 것도 없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란 말이 기억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란 말도 있습니다.

지금 하는 건 실전이 아닌 게 없습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행위도 경기를 뛰는 행위도 모두 실제 삶인 것이지요.

어제까지 했던 모든 것이 오늘 하는 것의 연습이 된 셈입니다.

오늘 하는 모든 것은, 내일이면 내일 하는 것의 연습으로 변합니다.

연습과 실전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 순서 상의 구분일 뿐입니다.


[ 눈오는소리 2020. 9. 15 (화) ]


#요행



모르는 것을 대충 넘어가려는 사람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가능한 일이, 다른 사람은 열 번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전 단계 일을 먼저 익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누구나 똑 같은 재료로 구성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중요한 일이 바른 방향을 찾는 일인데, 꼭 찾을 수 있다는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요청됩니다.

요행에 기대서 될 일이 아님을 새깁니다.


[ 눈오는소리 2020. 9. 16 (수) ]


#가르침



답을 건네 주는 건 ‘강요’와 닮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주인입니다.

가르치려 들 때 역효과가 나는 건, 상대방을 주인으로 대접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가르침은, 상대방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스스로 능동적으로 되는 겁니다.

답을 건네 주는 건 상대방을 수동적으로 만들지만, 질문을 하면 능동적이 됩니다.

스스로 답을 찾아서 일어서도록 지켜봐 주는 것, ‘가장 느린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눈오는소리 2020. 9. 17 (목) ]


#공허감



공허감의 정체를 알면 중독에서 벗어날 단초를 얻게 된다.


어쩌면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느낌이 공허감일 수 있습니다.

사실 공허감은 모든 창작의 자궁입니다.

의도적인 생각이 없는 텅 빔에서 영감을 얻어 멋진 작품이 탄생합니다.

공허감의 정체를 모를 때는 막연히 불편한 느낌을 회피하기 위해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먼저, 공허감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공허감을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그리고 공허감의 정체를 알아 슬기롭게 활용하는 겁니다.


[ 눈오는소리 2020. 9. 18 (금) ]


#나



마땅히 정의(定義)하지 못할 뿐, 내가 나를 모를 수 없다.


때에 따라, 나만을 챙기려고 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나를 압니다.

먹는 걸 밝히기도 하고 위대한 예술에 빠지기도 합니다.

웃기는 짬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게 ‘나’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나를 알지만, 너무도 진폭이 커서 모른다고 여기게 됩니다.

자기 중심 자리를 찾고 이치와 선악의 지혜를 쌓아가면서 자신이 조금씩 세워집니다.

군중에서 개인으로, 자기 세계를 갖게 됩니다.


[ 눈오는소리 2020. 9. 19 (토) ]


#음양(陰陽)



드러나는 세상은 음(陰)과 양(陽)이다.


잘 모를수록 복잡하고 모호해지고, 잘 알게 될수록 단순하고 명확해집니다.

오랜 시간 복잡하고 모호한 길을 찾아 헤매는 시기를 거쳐 길을 본 사람은 직선 주로에 들어선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의문과 배움 그리고 그에 따른 성장이 계속되겠지만, 그건 같은 방향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진행 과정입니다.

큰 의문은 큰 시련을 낳지만 그 속엔 큰 축복이 감추어져 있음을 음양의 원리가 말해줍니다.


[ 눈오는소리 2020. 9. 20 (일) ]


#합리성



세상 안의 합리성은 열정을 팔아 얻은 것이다.


합리성은 수학공식처럼 입력 값에 따라 이미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열정은 결과를 모릅니다.

마라톤의 기록도 세상의 혁신도, 합리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합리성’에서 그것을 지지하는 이론을 떼어내면 변명과 유사한 ‘합리화’로 전락합니다.

이론은 계속 변합니다.

세상을 밖으로 확장하는 합리성은,

결과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것으로,

열정까지 포괄하는 ‘메타합리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댓글 입력
댓글달기 이름 : 비밀번호 : 관리자답변보기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중 2가지 이상 조합, 10자~16자

/ byte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

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